경찰민주화의 영웅, 조현오
조현오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수학한 후, 제15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마침 고려대학교 출신이라 성군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근거 없이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외무고시는 1981년에 붙었으나 조현오는 1990년에야 경찰특채로 경찰에 입직하였습니다.
이미 경찰에 입직하기 전부터 10년의 공무원 조직 생활을 경험했던 것이죠.
중앙부처의 엘리트 고시 출신들 사이에서 근무를 해서 그런지,
조현오는 경찰의 적폐조직에 동화되지 않고 소신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조현오의 굳은 신념은 바로 고시 출신들이 가지는 특유의 프라이드와 청렴 결백함 때문일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기간 동안 지나치게 깨끘하다고 배척을 받던 조현오는
이명박 정부의 능력위주 정책에 발맞추어 드디어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고,
2010년에는 경찰청장이 되어 이명박 정부와 가장 잘 맞았던 청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1. 부정부패 척결
조현오의 제1의 업적은 누가 뭐래도 부정부패 척결일 것입니다.
경찰에 대해 겪어 본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노무현 정권만 하더라도 경찰 내 부정부패는 목불인견 수준이었습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매관매직이 아주 당연하였습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 치는 사람이 행정업무 유공으로 표창받고 심사 승진을 하는 등, 경찰은 부정부패가 아주 만연하였습니다.
내부적인 고름 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부정부패도 심각하였습니다. 교통경찰 1년 해서 아파트 못사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수사과 회식 때에는 종종 모르는 사람이 애국자라며 나타나서는 소고기를 계산하고 갔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겪어보신 분들은 다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가 돈 계산하고 갔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조현오는 이러한 부정부패를 척결하려고 무척 노력하였습니다.
울산남부경찰서에는 조현오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옵니다. 겨우 1만원 뇌물 수수로 걸린 사람도 파면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 당시에 겨우 1만원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통법규에 적발당하여 뇌물을 준 증여자가 자백한 금액이 1만원에 불과한 것이죠.
조현오는 이러한 부정부패자를 파면에 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파면은 너무도 당연하게도 적법하였죠.
행정법 판례중에 울산 남부경찰서의 판례가 있었는데 아마도 다들 추측하기로는
그 당시 개혁을 하려던 조현오와 이에 반발한 반동세력간의 주도권 다툼이 재판으로까지 번졌다고 보고있죠.
이러한 개혁은 조현오 정도의 청렴함과 능력, 담대함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 당시 경찰은 착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2. 능력주의 울산 남부경찰서 얘기를 한 김에 그 당시 얘기를 하나 더 꺼내어 보자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경찰 내에 노예와 적폐세력이 확연히 구분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부경찰서 수사과에 있던 시절에는 서울에서 기소중지자가 잡혔는데 혼자만 기소중지자를 잡아 오고
나머지 한명은 거짓으로 서류를 꾸며서 올려서 나머지 한명의 수당도 청구하라고 하여습니다.
일은 한명이 하고 나머지 한명은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먹는게 아주 관례화 되었던 것이죠.
지방청에는 사실상 3분의 2의 인원은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년 내내 성과평과 시스템의 비밀번호도 모르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정작 일은 한두명의 소수만 하지만,
승진할 때에는 키보드를 독수리 타법으로 치고 평소에는 전혀 일을 안하는 적폐세력이 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무현 정권 들어와서 무궁화클럽, 폴네티앙, 인권센터 등등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경찰대학 출신은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자기들은 맨날 놀고 있으면서
그 노는 시간에 키보드로 경찰대학 출신을 허위사실로 비난한 하는 일들이 심해졌습니다.
조현오는 이렇게 뒤에서 험담만 하면서 일은 안하는 사람은 걸러내고
진짜로 일을 하는 사람을 우대하는 신상필벌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개혁정책은 강한 반발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운동권 적폐세력으로 구성되었던 기존 인터넷 SNS 중독 종자들이 조현오를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실적주의와 쭉정이 걸러내기 작업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입니다.
문제가 될게 없습니다. 오히려 쭉정이를 걸러내는 일은 숭고한 작업입니다.
그런데 적폐세력은 자신들의 입지가 위협을 받게 되자
양천경찰서의 고문사건이 조현오의 실적주의 때문에 일어났다며 말도 안되는 궤변을 펼쳤습니다.
물론 당연히 증거는 없고 그냥 카더라로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개혁 세력을 제거해야 했거든요.
3. 전의경 복무 환경 개선
사실 과거 경찰내에서 전의경 환경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경찰대학 졸업자들도 전의경을 일종의 노비 취급하였고,
강압적으로 전의경을 대하면서 오히려 전의경 내의 구타 문화를 묵인하고 조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경찰대학의 경우에는 운동권 문화가 강하게 이식된 곳이기 때문에
폭력과 강압을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 학습시키던 곳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의경들은 사방이 적이었죠. 결코 간부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현오는 전의경들의 자유로운 신고 통로를 마련하고,
부정부패와 마찬가지로 병영부조리에 대해서도 무관용 원칙을 취함으로써 가혹행위를 상당부분 근절시켰습니다.
이때 전의경을 노비로 취급하면서 평생 놀고 먹으려던 살마들이 조현오 이름만 나오면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4. 몰락
이렇게 경찰에 진정한 민주주의 문화를 이식시킨 조현오이기에 적이 많았습니다.
폭력과 부정부패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조현오를 언제든 몰락시키기 위하여 이를 갈고 있었죠.
첫째는 사자명예훼손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서 명예훼손으로 실형을 사는 경우는 정말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더더군다나 사자명예훼손이라면 설령 진짜로 명예훼손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걸로 구속을 시키는건 말이 안됩니다.
학계의 주류의견은 사자명예훼손죄는 폐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그런데 조현오는 노무현이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정구속을 당하였으며, 2013년에는 대법원에서 징역 8월이 확정되었습니다.
만약 조현오가 말한 사람이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조현오의 구속은 좌파 세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아주 극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이후 조현오는 계속하여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현오가 경찰청장을 한 임기는 이명박 정부기간인 2010년이었지만 8년이 지난 2018년에는
직권남용이라는 희한한 논리로 다시 구속되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라는 것은 2017년과 2018년 문재인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문재인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다시 직권남용의 법리를 최소화하여 또다시 사문화 되었죠.
즉 직권남용은 2017년과 2018년에만 존재하던 형법이었습니다.
조현오의 말년은 이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기억합니다.
경찰과 전의경을 진정 사랑했었던 불꽃남자 조현오를요.
경찰 민주화의 영웅,
조현오가 언젠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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