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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학:경찰대학
경찰대학

개요

정식명칭 경찰대학(警察大學)
근거 경찰대학설치법
분류 국립대학
주소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황산길 100-50
(과거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로 74)
정원 학 학년에 100명(120명이었으나 문재인정권에서 100명으로 축소) 총 400명
교원 21명
직원 349명

경위 이상 경찰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4년제 특수조직이다. 경찰대학 설립 이전에는 경찰간부후보생 제도라는게 있었으나 경찰간부후보생 역시 수준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개하던 경찰조직을 계몽하고 바르게 이끌기 위하여 박정희 정권에서 설계하였고,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면 설립된 것이 경찰대학이다.

경찰대학은 그간 미개하던 경찰조직의 수준을 급격하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경찰대학 출신 중 일부가 좌파에 영합하여 경찰조직에 빨갱이를 양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초반에는 각 군 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집이 가난하거나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던 차남 이하의 신분 상승 통로, 즉 'Cadet' 제도로서 긍정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이후 잘난 후배들을 싫어하는 일부 좌파 졸업생 동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행동으로 인하여 'Cadet'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경위 근속을 승진을 통하여 경찰대학 출신을 더 이상 간부가 아닌 실무 경찰로 만들었으며, 문재인 정권에서는 경찰대학 인원을 120명에서 100명으로 축소하였고 이 중에서도 50명은 순경 편입자로 채웠다. 이로써 경찰 내의 우민화는 완성되었고 경찰대는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우민화 작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대학 졸업 자 중에 좌파 적폐세력과 유착하여 나라를 매국노 짓을 하면서 나라를 망치는 것으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던 자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가혹행위 및 우민화 교육

1. 가혹행위

경찰대학의 가혹행위는 상당히 유명하다. 경찰대학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학생들을 폭력에 노출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로지 4년 동안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물론 단 하나였다. 비판적인 학생의 사전 처단 - 김대중 정권 이후 경찰대학의 가혹행위는 무척이나 심해졌었다.

가. 대가리 박아 위주의 가혹행위

경찰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2,000년대 학번 기준으로 서울대 중하위권 수준은 된다는 것이 내외부의 평가였다.

따라서 이들의 뛰어난 두뇌가 상당히 골칫거리였다. 주지하듯 김영상 부터는 운동권이 정권의 주력세대가 되었다. 그런데 운동권은 뛰어난 두뇌를 싫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질서를 유지를 담당하는 경찰에 뛰어난 두뇌가 양성되는 것은 운동권에게 무척이나 부담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경찰대학에서는 일부러 대가리 박아 위주의 가혹행위를 하였다. 장시간 대가리를 박으면 두뇌세포가 죽기마련이다. 실제로 두뇌를 다치면 정상적인 사고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대학의 지도실에서는 대가리 박아를 방조하였다. 학생들은 장시간 대가리 박아를 통하여 점차 평균인과 비슷한 두뇌수준으로 수렴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은 멍청한 존재라는 세뇌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두뇌를 나쁘게 만들고 나서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세뇌하였다. “경찰은 결코를 머리를 쓰는 직업이 아니다. 자네들은 수족에 불과하다” 라면서 경찰 생활에는 사고력과 비판력이 필요 없다고 세뇌하였다.

대가리 박아는 두뇌세포를 죽이는 것 외에도 허리를 다치게 하는데에도 효과적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대가리 박아를 통하여 재학 시절 중 허리를 다치게 되었다. 허리를 다친 학생은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경찰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되는 학생이 많아질 수록 생각 없는 노예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경찰대학은 대가리 박아를 가장 효과적인 노예 양성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2. 비례원칙을 현저하게 벗어난 가혹행위

경찰대학의 가혹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대의 피끓는 남자들을 한 곳에 가둬놓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철학적 물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군대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선임들과 내무반을 같이 쓰는 것이라고 한다. 선임들이 괜히 꼬투리를 잡아서 후임들을 괴롭히는 것을 받아주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경찰대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20대 초반의 성욕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수직적 조직문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다 보니, 그 알량한 권력이란 것을 가지게 된 선배 기수들은 후배기수들을 자신의 해소되지 못하는 성욕을 대신할 폭력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러한 가혹행위는 과연 그것이 훈육을 할 대상인지 조차 명백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가혹행위는 먼지가 쌓였다거나, 명찰이 삐뚫어졌다거나, 셔츠-버클-바지의 삼선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루어졌다.

가끔은 참지 못하고 선배에게 대들었다는 후배들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일주일 내내 '투어'라는 이름으로 가혹행위를 행하였다. 이를 테면 월요일에는 어떤 사람이 3시간 가량 기합을 줬다면 화요일은 다른 사람이 주고, 수요일은 또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일주일간 기합을 주는 방식이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어떤 식으로든 폭력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경찰대학은 폭력을 방조 내지 묵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이 너무 만연하였다.

2. 우민화 교육

경찰대학의 몰락

개요

경찰대학의 몰락은 예견되었었다. 수많은 우민화 교육에도 불구하고 경찰대학 출신들의 퍼포먼스는 순경 공채 출신에 비하여 훨씬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외부적으로는 경찰대학 폐지론이 끊임 없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하여 경찰대학 출신들은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폐지론에 동조하였었다. 학교시절의 그 가혹행위가 평생동안의 PTSD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나온 모교가 제발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몰락을 위한 여러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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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학/경찰대학.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4/04/14 16:39 저자 이거니맨